독립의 꽃을 피워낸 열사 유관순 유관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독립운동가. 그런데 그녀는 단지 거대한 일본 제국주의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 하나에 불과했는가? 열사는 감옥에서 숨졌고, 꿈에 그리던 독립은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스물다섯 해를 더 기다려서야 왔다. 그녀의 외침은 외롭고 헛되이 높은 감옥 담장 안에 갇혀 맴돌다 사라져간 허무한 외침이었는가? 3·1운동을 9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볼 때 유관순 열사는 단지 독립만세운동의 한 주역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관순은 비록 체계적인 사상을 글로 남기진 않았지만, 그녀가 참여하여 이루어낸 3ㆍ1운동과 그녀의 삶과 죽음은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행동의 모형을 제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립’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선 3·1운동은 세상을 바꾸었다. 3·1운동은 당시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크게 반향을 일으킨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세계는 약소국들의 독립선언이 나타나기 시작해 독립의 성과가 제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가속화되어 한국을 비롯한 47개국이 독립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동서 냉전이 격화되면서 그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어 90개국이 독립했고, 구소련 해체 이후 29개국이 더 독립했다. 지구상에 독립의 꽃이 만발하게 된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바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이요 신호였다. 우리가 유관순 열사를 기억해야 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