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퇴계학의 좌우파 논쟁

19세기 퇴계학의 좌우파 논쟁

  • 자 :이종우
  • 출판사 :역사공간
  • 출판년 :2017-01-06
  • 공급사 :아카디피아 전자책 (2017-06-02)
  • 대출 0/2 예약 0 누적대출 0 추천 0
  • 지원단말기 :PC/스마트기기
  • 신고하기
  • 대출하기 추천하기 찜하기
  • qr코드

퇴계학을 그대로 답습한 우파와 심즉리(心卽理)로 주장한 좌파 이진상에 관한 논쟁 이 책은 퇴계학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해석에 따라 분화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을 다루었다. 그 중에서도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에 걸쳐 영남에서 벌어진 성리설 논쟁을 연구하였는데 퇴계학을 답습했던 정재 유치명과 답습을 넘어 변용했던 한주 이진상의 논쟁은 그 제자들로까지 이어져 오랫동안 전개되었다. 논쟁의 원인은 퇴계가 양명학을 비판하는『전습록변傳習錄辨』을 썼음에도 그 후학인 이진상이 양명학의 심즉리(心卽理)에 대해 비판과 옹호를 함께 하였기 때문이었다. 정재 유치명을 비롯한 우파는 퇴계의 심합이기(心合理氣)를 그대로 주장하였는데 이진상은 퇴계의 심합이기(心合理氣)에서 ‘심’의 본체는 ‘이’라고 하며 심즉리를 주장한 것이었다. 한편, 하겸진이 『동유학안東儒學案』이라는 고서양식의 유학사에서 이 논쟁을 ‘평포논쟁平鋪論爭’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평포논쟁은 유치명을 평학(坪學), 이진상을 포학(浦學)이라고 하여 이름 붙인데서 비롯한 말이다. 평포논쟁은 퇴계학파에서 벌어진 중요한 논쟁으로 이진상의 심즉리설(心卽理設)로 인해 유치명과 그 제자들과의 논쟁에 국한되지 않고 영남지역뿐만 아니라 기호학파와의 논쟁으로까지 확대하게 되었다. 필자는 평포논쟁이라는 말 대신 좌파와 우파의 논쟁으로 보았는데 이진상에 대해서는 퇴계학을 답습하지 않고 변용한 좌파, 그를 비판하는 다른 성리학자들을 우파라고 보았다. 또한 퇴계학이라 칭한 것은 퇴계의 성리설이 주자학에 대한 답습을 넘어 창의적인 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산서원에서 한주 이진상의 문집을 돌려보내고, 경기도 상주에서 그것을 불태운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퇴계의 후손인 이만인이 주도했다고 한다. 퇴계학을 그대로 답습했던 우파가 좌파인 이진상의 심즉리를 양명학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그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 논쟁은 끊임없이 있었고, 조선시대 19세기 중반에 시작하여 무려 1백여 년간 지속되었다. 이 책은 이것을 다룬 것이다.
지원단말기

PC : Window 7 OS 이상

스마트기기 : IOS 8.0 이상, Android 4.1 이상
  (play store 또는 app store를 통해 이용 가능)

전용단말기 : B-815, B-612만 지원 됩니다.
★찜 하기를 선택하면 ‘찜 한 도서’ 목록만 추려서 볼 수 있습니다.